"준비 됐어?" 지현이 물어오는 말에 다연은 끄덕였다. 지현은 예지와 다연의 눈을 감겼다. "우연이 죽으려고 하면 막아줄 수 있어?" 다연과 예지는 긍정의 대답을 한다. 지현도 눈을 감는다. 눈을 감아도, 여기저기서 빛이 반짝인다. 자신을 찾아달라는 것처럼 발광하는 불빛들. 지현은 빙그레 웃는다. 갈 곳은 정해져 있다. 좌우에서 번쩍이는 빛들과는 다르게 꺼...
"..." 예지는 다연을 관찰한다. 다연은 언제 열을 내며 소리를 질렀냐는 듯이 놀랍도록 조용하다. "발뺌하면 이거 보여주려고 했는데." 다연이 꺼내든건 손수건이었다. 고등학생이 쓸 거 같은 디자인이 아니었다. 게다가 이니셜 자수가 박혀있다. H.J. "언니 방에서 이런 게 나오길래 누구 건가 했는데.. 하." 다연은 손수건이 혜진의 것인 걸 알았을 때 그...
한동안 병실에는 적막이 흘렀다. 누구도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. 예지는 그 침묵을 참다 못해 다연에게로 다가섰다. 자신의 눈을 피하는 다연을 끈질기게 응시하며 말을 또박또박 전했다. "그래, 이렇게 돌려 말하는 건 역시 내 성격에 안 맞아. 네 언니는 죽었어. 너는 먼저 그것부터 인정해야 돼." 다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. 그 두 눈에는 믿지 못할 사...
염원했던 대로 나현은 예지를 잡는다.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해주었다. 예지는 이제 나현을 이유로 대서라도 살아갈 것이다. 그게 얼마나 갈지는 몰라도. P의 몸에서 대부분의 힘이 빠져나간다. 이제 자신은 지현에게 기생해서 살아가는 수 밖에 없다. 자력으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별볼일 없는 존재. '원래부터 그래왔잖아.' 지현은 P의 기억을 전부 보고...
네 정체를 말해. 네가 언제나 예지를 봐왔다고 말해. 예지를 구하고 싶었다고. 그렇게 말하란 말이야. 지현의 마음은 울림으로 그쳤다. 이 일은 그저 과거의 기억이기 때문에. P는 그저 웃기만 한다. 그러나 그 안에서 느껴지는 새카만 절망감은 지현도 익히 아는 감정이다. P의 마음은 문드러진다. 점점 썩어간다. 형체도 남기지 않고 썩어서 악취를 풍긴다. '....
김우연이 죽었다. 그렇게 들었다. 실종되었는데, 한참을 찾으니 어느 모텔에서 숨 진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. 동정의 시선을 받아야 할 죽은 이의 동생은 학교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. 예지는 턱을 괴었다.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다. 누구에게라도 시비를 걸고 싶은 날이다. 지현이 가까이 다가온다. "예지야, 기분이 어때?" 지현이 물어온다. 어떻긴 뭘 어때....
'좋아해.' 그런 고백은 많이도 들었고 많이도 거절했다. 자신의 어디가 좋아서 그러는 건지 묻고 싶기도 했으나, 그건 또 예의가 아니라서 그저 넘어갔다. 그렇게 나현은 자신의 어디가 좋아서 고백을 한 건지 단 한번도 듣지 못했다.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. 자신의 친절 한 번에 금새 좋아한다느니 뭐니, 그렇게 마음이 쉬운 거냐고. 이면적인 면이 없는...
쉬는 시간에 지현이 예지에게 가서 말을 꺼냈다. 말투는 이미 들뜬 사람의 것이다. “우리 영화 보러 가는 거 어때?” 예지는 하루이틀 일이 아닌 듯 여상하게 받아쳤다. “영화는 무슨 영화야.” 지현은 그에 굴하지 않고 예지를 조르기 시작했다. “아니, 요즘 재밌는 거 있다는데. 엄청 재밌대.” 지현과 예지가 대화하는 걸 들은 나현은 호기심에 슬쩍 둘 사이에...
발표가 끝나고 나서 나현은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. 나현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떨어트린 채였다. 무언가 부족했다고 생각했는지 눈은 괴로움을 참는 듯 했다. 다연은 나현의 그 모습이 나현 답지 않다고 생각했다. “잘했어.” 다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주먹을 쥐어보였다. 그 말에 나현은 살짝 미소 지어보였다. 그는 조금은 지쳐보이기도 하다. 다연은 멀리서 자...
어느 날 P가 찾아왔다. P는 서서히,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침범해있었다. 지현이 그걸 알아챘을 때는 이미 쫓아낼 수도 없게 지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. P는 존재를 알아달라는 듯이 쉭쉭대는 소리를 낸다. 울리는 소리를 도저히 참을 수 없어진 지현은 어느 날은 머릿속으로 P에게 말을 걸었다. 일부로는 아니었고, 무의식 중이었다. ‘넌 누구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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